현금 없는 사회, 즉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굳이 현금보다 모바일이나 카드로 결제하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디지털 화폐의 상용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과연 현금 없는 사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알아보자.

 

  이상화 / 코인원 모바일 프로덕트 오너 겸 서비스 기획 총괄
전)FINNQ 핀테크 신규사업
전)KEB 하나은행 미래금융사업부

 

가끔 몸이 찌뿌둥할 때마다 찾게 되는 ‘현금이 필요 없는 작은 사회’가 있다. 그곳에선 식음료, 각종 엔터테인먼트 및 부가시설을 이용하는 데에 현금은 필요 없다. 팔에 찬 개인사물함 열쇠가 모든 지급결제를 대신하는 수단이다. 그렇다 바로 찜질방이다. 현금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이미 우리는 현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두둑한 지갑이라는 관용어는 쓰일지 몰라도 실제 지갑을 두둑하게 하고 다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국가차원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권장하는 것은 비용절감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지폐와 동전을 발행부터 유통, 회수하는데 드는 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투명한 거래정보를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와 정부 세입을 증대 시킬 수 있는 점도 효과라 볼 수 있겠다. 현금 없는 사회의 표면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사회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소외되는 계층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과 개인정보 노출, 해킹 보안문제 등의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현금 사용이라는 경제활동의 옵션이 제거되면서 생기는 문제는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강력한 사회통제로 이어질 지 아닐 지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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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가올 현금 없는 사회가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에 대한 논란은 사회적 이슈로 잠시 제쳐두고 변화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보는 것이 어떨까. 넷플릭스가 비디오 시장을 붕괴시켰어도,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음으로 이끌었어도, 우린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동영상을 보니까 말이다.

정책적 방향과 기술적 발전이 만나 가속도가 붙었다. 현금없는 사회로 가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발행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당장 발행까진 아니더라도 주요국가의 중앙은행은 CBDC를 연구과제로 선정하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은행권·동전과 같이 실물이 수반되는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방식으로만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는 엄밀히 말하자면 ‘강화된’ 현금 없는 사회라 볼 수 있다.

‘강화된’ 현금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까. 다가올 디지털 화폐 사회에서는 무엇이 달라질 지 현재의 핀테크 비즈니스를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핀테크는 기존 화폐의 사용성 그리고 정보수집 및 재해석에 주목했다. 불편하거나 어려웠던 금융 서비스를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혁신하면서 금융업에서도 멋진 UX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넥스트 핀테크는 어떠한 형태로 찾아올까. 화폐의 사용성 혁신을 넘어서 화폐 기능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예를 들어 사용조건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지만 이자가 훨씬 낮은 돈은 어떨까. 즉 화폐 자체가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로 구현됨에 따라 현금과 달리 관련 거래의 익명성을 제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조건을 걸 수 있다. 사용가능한 장소나 시간을 제한하는 등 IFTTT(IF This, Then That, 이것을 하면 다음에는 저것의 단계, 앱과 앱을 연결하기도 하며, 앱과 주변 사물을 연결하기도 함)가 가능한 화폐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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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능이 탑재된다면 특정 자금의 요구를 충족 시켜줄 수 있다. 이를 테면, P2P 신용대출의 경우 채무자의 자금용도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면, (혹은 신뢰 할 수밖에 없는 화폐로 지급된다면) 자금조달 비용(즉 이자)의 감소는 물론 기존 신용등급만으로 측정해야 했던 채무 불이행에 대한 위험이 현저하게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화폐 자체에 대한 기능적 실험은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분야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아직까진 그 실험이 성공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화폐 고유의 기능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더 많기도 하다.

새해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덕담과 함께 오고갈 빳빳하고 깨끗한 돈을 찾는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 명절이 다가오면 아침부터 신권준비로 분주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디지털화폐 시대가 도래한 이후 새해에는 어떤 조건이 붙어있는 세뱃돈이 각광 받게 될 것인가.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밀어낸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재해석될 수도 있겠다. 그 당시 좋은 돈의 기준이 금이나 은의 순수 함량이었다면, 또는 빳빳함이 그 기준이었다면, 디지털 화폐와 현금 없는 사회에서의 좋은 돈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 특정 정보나 조건을 가진 화폐가 양화일까, 익명성이 보장된 화폐가 양화일까, 한번쯤 아니, 두세 번쯤은 우리 스스로 상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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